아이를 재우고 나면
집이 갑자기 조용해진다.
불은 켜져 있는데
하루가 끝난 것 같은 시간.
⸻
이 시간에
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.
해야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,
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.
⸻
하루를 돌아보면
분명 계속 움직였다.
회사에서의 하루가 있었고,
집으로 돌아온 뒤의 시간이 있었고,
아이를 재우기까지의 과정이 있었다.
그런데 이상하게
이 모든 게 끝난 뒤에는
아무것도 시작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.
⸻
이럴 때
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
대개 비슷하다.
“의지가 부족한가.”
“또 아무것도 안 하네.”
⸻
하지만 이 밤은
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생긴 시간이 아니다.
하루 안에서
너무 많은 역할을 지나온 뒤에
도착한 시간에 가깝다.
⸻
아이를 재우고 나면
하루의 마지막 역할마저 끝난다.
그제야
몸이 아니라
마음이 먼저 멈춘다.
⸻
그래서 이 밤에는
계획도 잘 세워지지 않고,
정리도 쉽게 되지 않는다.
그냥
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
이미 충분히 지나온 하루처럼 느껴진다.
⸻
이 밤이 반복되면
어떤 날은
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남는다.
하지만 실제로는
아무것도 하지 않은 밤이 아니라,
이미 다 지나온 뒤의 밤일지도 모른다.
오늘 밤은
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,
하루가 조용히 끝나는 방식 중 하나로 남겨두기로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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